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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첫 희생자 이세종...18년 만에 열사로 인정

2020.05.17 20:39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전북의 5.18을 되돌아보는 기획 보도.

두 번째 순서로 5.18의 첫 희생자
고 이세종 열사의 행적을 되돌아봅니다.

사건 발생부터 고인의 죽음이
공식적으로 인정 받기까지 과정을
주혜인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1980년 5월 18일 새벽.

당시 호남대학총연합회 연락책임자였던
이세종 열사는
비상계엄 철폐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전북대 학생회관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런데 신군부가
전국으로 계엄령을 확대하고,
소총과 몽둥이로 무장한 채
학생회관을 기습했습니다.

계엄군의 진입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그는
이 사실을 알리러 다니다
군인들에게 쫓겼고,
결국 학생회관 앞마당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그는 광주에서 첫 인명피해가 발생한
18일 오후보다 반나절 이상 앞서
신군부에 의해 살해된
5.18 최초의 희생자였습니다.

[김성숙/이세종 열사 대학 동기]
우리가 여학생 회장실에서 자는 것을 알고 우리를 깨우러 온 거예요. 문을 막 두드리면서... 빨리 도망가라는 말을 하고 다니다가 이세종이 계엄군과 만나는 거예요.

당시 계엄군이 발표한 사인은
'단순 추락사'.

하지만 사진 속 시신은
명백한 타박상이었습니다.

[박병하/이세종 열사 대학 동기]
시신 사진 몇 장을 저한테 보여줬어요. 모든 게 타박상, 핏자국, 찢어진 팬티 이런 것들이 많이 보였었고...

9년이 지난 1989년,
당시 부검의인 이동근 박사의 진술로
죽음의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두개골의 광범위한 복합골절과
얼굴과 가슴, 배 부분의 타박상은
추락 전 계엄군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됐습니다.

하지만 광주가 아닌
타 지역 희생자라는 이유로
5.18의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 후 18년이 지난 1998년.

세 차례 신청 끝에
광주 민주화 관련 보상심의회는
이세종 열사를 공식적인
5.18 사망자로 인정했습니다.

당시 신군부의 검열로 삭제됐던
이세종 열사의 죽음을 보도한 기사도
20년 만에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이민규 교수/삭제된 보도기사 최초 발견자] 그 당시에 통신사하고 신문사가 그것을 파악을 하고 기사를 송고했으나 그것이 신군부의 검열 당국에 걸려서 기사가 나가지 못하게 된 거죠.

21살의 꽃다운 나이로 숨을 거둔
5.18 최초의 희생자 이세종.

5.18 40주년을 맞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열사입니다.

JTV NEWS 주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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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인 기자 (hijoo@j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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